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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 (소설 1화)

by storydrama 2025.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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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 (소설 1화)

1화 실직 

은수는 회사에서 여러 동료들 앞에서 대놓고 무시하는 김대리의 폭언에 몹시 분노를 했다. 화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수치심, 무안, 민망, 모욕감 등 여러가지 나쁜 감정을  느끼며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입안에서 무슨 말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여러가지 말들이 입가에서 맴돌았지만 입을 굳게 닫고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여는순간 그동안 김대리한테서 받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포수처럼 밀려나와 온갖 욕이 마구 튀여 나올 것만 같았다.

빨리 빨리 일을 하지 못한다는 둥, 눈치가 없다는 둥, 온갖 모욕적인 말을 대중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는 김대리의 입을 찢어주고 싶었다. 속담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있다. 은수는 결국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그동안 나름대로 참고참고 견디며 계속 회사를 다녀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첫직장에서 3개월만에 그만두게 된 것이다. 김대리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고 김대리가 회사를 떠나지 않는 이상 자신이 계속 김대리와 얼굴을 마주보며 일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군필자, 컴퓨터 정보통신공학과를 졸업한 은수는 첫 직장에 합격한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각도 없이 성실하게 회사를 다녔다.  팀을 이루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맡았는데 김대리와 한팀에서 일하게 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늘 이죽거리며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김대리와 함께 일하기 싫어서 팀을 바꾸어 달라고 회사에 요청했지만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은수는 김대리를 보면 군대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선임 강민혁이가 생각나곤 했다. 나이는 같았지만 1년먼저 군대에 들어갔다고 선임이라는 이유로 늘 괴롭혔다. 그때도 군대를 탈영하고 싶었지만 끝까지 참았다.  하지만 회사에서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자기자신이 못나보여서 몹시 마음이 우울하기도 했다. 

맞짱뜨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은 마음안에서 뿐이었다. 싸움을 싫어하는 은수는 누구와도 싸우기를 꺼렸다. 싸울 용기조차 없었다. 싸울 용기가 없는 은수는 늘 당하면서 살게 되었고 그 분노는 마음속에서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은수는 남앞에서 욕하는 것도 부끄럽게 여겨 욕을 할 줄도 몰랐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갖가지 욕이 입가에서 맴돌았다. 속시원하게 욕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는 은수는 늘 김대리에게 바보취급 당했다. 1:1로 나한테 불만을 하거나 지시사항을 말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참을 수도 있고 잘봐 달라고 간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자식은 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는데는 참을 길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앞에서 면박 당하지 않은 사람은 정말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은수는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몹시 상했다. 

집에 돌아와 TV를 켜니 뉴스가 흘러나왔다. 3개월전에 실종된 20대 여성이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였다. 최근에 여성들이 실종되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는 뉴스였다. 

다음날 아침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빈둥빈둥 거렸더니 부모님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 아들, 갑자기 의논도 없이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면 어떡해?" 엄마가 한마디 하자

아빠는 " 그래 뭐 다른 계획 있니? 무슨 계획이 있으니까 직장을 그만뒀을거 아냐?"

식탁에서 부모님과 아침밥을 먹던 은수는 목구멍에서 밥이 걸린것 같고 답답해져왔다. 먹는둥마는둥 수저를 놓고 방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기도에 밥이 들어갔는지 방안에서 언신 코를 킁킁거리던 은수는 코안에서 밥알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죽을뻔하다가 살아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이 불편하면 몸은 어떤식으로든 반응하는 것 같았다.

은수는 방문을 잠갔다. 방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게임에 접속했다.  게임에 접속하면 모든 근심걱정을 잊을 수 있다. 새로운 세상 안으로 들아갈 수 있었다. 자유를 느꼈다.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온라인 게임을 시작했다. 상대편을 쓰러뜨려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게임이다. 은수는 키보드를 연타적으로 따다다 빠르게 쳤다. 따따다 퍽 상대방이 쓰러졌다. 기분이 좋았다. 통쾌했다.

상대방을 김대리라고 생각하고 따따닥 계속 빠르게 키보드 키를 눌렀다. 따다닥 퍽 김대리가 쓰러졌다. 그렇지 그래.  은수는 기분이 좋아져서 계속 상대방을 게임선수를 쓰러뜨렸다. 

게임이 종료되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살인을 해보고 싶었던 적이 있어?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던 적이 있냐고?" 

은수는 너무 놀라서 아무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키보드에서 깜빡깜빡 거리고 은수가 아무말도 못하자 " 왜 대답안해? 대답해" 

김대리가 생각났다. 군대에게 괴롭혔던 강민혁도 생각났다. 은수는 정말로 그들을 죽이고 싶었다. 마음속에서 미움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때가 떠올랐다.

은수는 대답했다. " 죽이고 싶다고 진짜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어딨냐?" 

그러자 상대방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 나는 죽이고 싶으면 진짜로 죽인다. 그게 얼마나 짜릿한지 흥분되는지 아니?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말해. 내가 죽여 줄 테니까. 크하하하 크하하하 크하하하 "

방문을 두드리는 엄마의 말소리에 놀라 은수는 정신이 들었다. 

"은수, 왜 방문을 잠갔어? 화났니? 과일 깎아왔으니 방문 열어. "

은수는 재빨리 상대방 게임선수 닉네임을 확인한 후 로그아웃을 했다.

"초록별의 제우스신" 이라는 닉네임이다. 

엄마는 방문앞에 커피와 과일을 놓고 나간다며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현관문소리가 딸각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은수는 방문을 열었다. 커피와 사과가 쟁반위에 놓여져 있었다. 커피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은수는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앗뜨거" 

은수는 커피잔을 내려 놓고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속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초라한 모습의 28세 남자가 거울속에서 말했다. " 넌 누구니? 왜 태어났어?"

은수는 정말 자신감을 잃었다. 자신이 누구이며 왜 태어났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막막했다. 새로 직장을 잡아야 하는데 직장에 들어 갈 엄두가 생기지 않았다.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누었다. 시원했다.  은수가 화장실에서 방안으로 다시 들어갔을 때 휴대폰에서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

"은수야, 너 직장 그만뒀다며? 나올래? 점심이나 같이먹자. 내가 밥살게"

혜원이는 점심을 먹는내내 계속 수다를 떨었다. 혜원이와 은수는 같은 동네 초중고를 함께 다녔던 옆집에 사는 친구였다. 

" 너 우리엄마 전화받았지? 엄마가 너한테 나 밥사주라고 했지?"

" 무슨 소리야? "

" 그럼 내가 직장 그만둔거 어떻게 알았어?"

"너네 엄마한테서 너가 직장 그만뒀다는 말은 들었지만 밥사주라고는 말은 못 들었거든. 밥은 순전히 나의 마음에서 사는거야" 혜원이는 양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손짓으로 제스처를 해대며 무엇이 신나는지 연신 웃으며 음식을 마구 씹어 먹었다.

혜원이는 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지만 직장은 아직 잡지 못하고 가끔 파트 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낸다고 했다.

혜원이는 점심을 먹고 노래방 가자고 했으나 은수는 내키지 않아서 거절했다. 하지만 혜원이는 노래방에 혼자 가기 싫다며 은수를 억지로 끌고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혜원이는 노래방에서 1시간내내 혼자서 노래를 불렀다. 은수는 그런 혜원이를 지켜보며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얼마나 목청이 좋고 시원하게 부르는지 은수는 그녀의 목소리에 감탄했다.

" 너도 불러봐. 왜 안부르는데?" 

혜원이는 은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재촉했지만 은수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노래를 부를 기분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노래방에서 나온 혜원과 은수는 집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혜원은 갑자기 생각난 듯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요즘 길가던 여자들이 실종된다는 소문이 있다며 뉴스를 봤냐고 물었다. 

" 뉴스, 무슨 뉴스?"

" 실종된 여자가 시체가 되어서 나타났다는 뉴스 못봤어?"

" 봤어"

" 넌 남자라서 안무서운지 모르지만 나는 어디 혼자 가는 것도 무서워졌어"

혜원이 정말 무섭다는 듯 오싹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은수는 게임속에서 말하던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 나는 죽이고 싶으면 진짜로 죽인다. 그게 얼마나 짜릿한지 흥분되는지 아니?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말해. 내가 죽여 줄 테니까. 크하하하 크하하하 크하하하 "

은수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혜원이가 말했다. " 도대체 남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인간은 어떻게 생긴 인간일까? "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도 있어. 계속 남을 괴롭히는 인간을 보면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

은수가 흥분해서 한마디 했다. 그러자 혜원이는 " 남의 생명을 거두는 것은 신의 영역이야.사람의 영역이 아니라고" 

"그렇게 무서우면 혼자 다니지 않으면 되겠네" 

" 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같이 다닐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혼자 다녀도 마음편하게 다닐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거야. 한국의 치안이 이정도밖에 안되는거냐?" 

혜원이도 흥분해서 열변을 토했다. 그렇게 혜원이와 은수가 대화를 하며 집을 향해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저만치서 어떤 남자가 모자를 눌러쓰고 은수와 혜원의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남자의 얼굴을 은수는 얼핏 보았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것은 바로 군대에서 그토록 은수를 괴롭혔던 선임 강민혁이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의 얼굴이 다시 자신의 앞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은수는 놀라 얼른 그의 얼굴을 왜면한채 자신도 모르게 혜원의 팔을 잡았다.

" 아는 사람이야? 왜그래?" 

혜원이 은수의 얼굴 색을 살피며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쉿" 은수는 입을 다물라는 손짓으로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뭔지 모를 불길한 생각이 스쳐갔다. 다시는 얽히고 싶지 않은 그얼굴, 강민혁의 얼굴이었다.

은수는 절대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그새끼 얼굴을 다시 보게 되는지 알수 없는 소름이 끼쳤다.

빨리 지나가려고 은수가 혜원의 팔목을 잡아 이끌면서 걸음을 주춤거리며 설마 잘못 본 것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뒤를 돌아본 은수 다시 그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모자를 쓰고 지나가던 그 행인이 설마 강면혁은 아니겠지 재차 확인해보려고  뒤를 돌아보자 은수와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친 것이다. 

그 행인이 은수와 혜원 곁으로 뒤돌아서 걸어 오는 것이다.

은수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냥 좀 지나가라, 왜 다가오는 것이지? 은수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오갔지만 발이 얼어붙었다. 도망 칠 수도 없었다. 온 몸이 그자리에서 저절로 얼음 동상이 되어버렸다.  

" 어, 이게 누구야? 정은수? 너 이쪽에 살아? 정말 오랫만이네? 반갑다. 나 강민혁이야."

지나가던 행인이 강민혁이라며 악수를 청하는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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