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들은 우발적인 살인도 있고 복수심에 의한 살인도 있고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들도 있는데 살인자들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절대 말하지 않아요. 나는 그런 살인범들은 본 적이 없어요. 끝까지 잡아떼다가 증거를 들이대면 그때서 자백하는 경우는 있지"
김경원 형사는 은수와 혜원이가 황당한 이야기로 신고를 한다는 듯 질책을 했다.
"형사님, 만에 하나라도 그 자가 진짜로 살인범이라면요? " 혜원이 답답한 듯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누군가 나는 살인자요 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 다 잡아가두나요?
익명성으로 게임 하는 사람들이 무슨말인들 못하겠어요."
"미나는요? 그럼 누가 살해를 했는데요? 범인은요? "
혜원이 다그치며 말했다.
" 수사를 하고 있어요. CCTV도 찾아봤고 국가수에도 의뢰를 했으니 뭔가 단서가 나오면 그때 알려드리죠."
형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피곤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형사님, 상대방 IP주소를 알아오면 추적해서 누군지는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은수가 묻자
"상대방 IP를 통해 정확한 집 주소를 추적하는 건 사이버수사대의 정식수사를 통해서만 가능해요. 범죄에 연관된 경우라도 수사 영장 없이 개인정보를 알아내기 위한 IP 추적 행위는 불법이에요."라고 형사가 대답한다.
은수와 혜원은 김형사의 명함을 받아 온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커피숍에 들렀다.
"커피마셔. 이 커피숍에서 미나랑 만나기로 했던 건데 내가 늦는 바람에 미나가 찾아오다가 실종됐어"
"미안해. 나때문에 약속에 늦은 거잖아."
"그때 왜 넌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그러고 있었던 거니?"
"그냥 살기가 싫더라고. 부모님의 잔소리도 듣기싫고 싸우는 소리도 듣기 싫고
집에서 뛰쳐 나가서 어디론가 숨어버릴까도 생각해 봤는데 돈도 없고 겁도 나고"
"집에만 있지말고 직장 다시 알아봐서 들어가야지"
"나는 직장생활과 안 맞는 사람인가 봐. 다시 직장 들어가는 게 마음에 내키지가 않아"
"은수야, 사는게 진짜 힘들다 그렇지? 세상은 너무 흉악해져 가고 있고 미나가 저렇게 되고 나니까 살맛이 안나. 정말 소름 끼치고 무서워" 혜원이는 다시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내가 술취해서 안 들어온 날, 민혁이 친구 송준오집에서 새벽에 깼거든"
"송진오?"
"로스쿨 다닌다는데 부모님이 부자인가 봐. 미남형이고 젠틀해. 성격도 좋고 똑똑한 사람 같아. 그런데 그 집 분위기가 뭐라고 해야 할까. 빈집이라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좀 그랬어"
" 빈집?"
"부모가 팔려고 내놨는데 안팔려서 잠시 쓰고 있는 거래"
"부잣집 아들에 로스쿨까지 다닌다고? "
" 아참 기억났다. 그 친구도 내가 하는 게임 프로그램이 컴퓨터에 깔려있었어. 내가 잠깐 컴퓨터 오류 난 거 고쳐줄 때 봤어"
"로스쿨 다니면 법전만 가지고 다닐텐데 그런 사람이 게임을 왜 하겠냐?"
" 넌 게임이 얼마나 재밌는 줄 몰라서 그래. 게임 속 세상이 현실 속 세상보다 훨씬 재밌거든"
은수와 혜원이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 두 명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강민혁이 정은수 옆자리에 앉으며
"이게 누구야? 정은수 너 여기서 또 만나네. 준오야, 너도 앉아" 하는 것이다.
송준오는 혜원을 흘낏 쳐다보더니
"민혁아, 우리는 저쪽 빈의자로 가자. 여자친구분도 계신데"
" 저쪽 빈의자 지금 막 다른 손님들이 와서 앉잖아. 여기 자리 넓은데" 하는 것이다.
강민혁은 은수가 본체만체 하자
"자식, 여전하네, 남자자식이 계집애처럼 새초롬해서는.... 넌 내가 그렇게 아직도 밉냐?"
혜원이 강민혁을 쳐다보더니
" 좀 무례하시네요. 앉아도 되는지 물어보고 앉으셔야죠."
이렇게 혜원이 말하자
송준오는 " 실례 했습니다." 하고 일어서려고 하자 은수는 그때서야
" 괜찮으니까 앉아." 하는 것이다.
강민혁은 혜원이와 은수를 번갈아가며 은수에게 묻는다.
"여자친구?
" 그냥 친구야" 라고 은수가 대답한다.
"은수야, 지난번에 너 술취하니까 본심이 막 나오더라.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네"
강민혁은 비꼬는듯한 말투로 당장 싸움이라도 걸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같은 나이고 같은 대학교 출신이라고 해도 군대는 내가 먼저 들어가서 선임이 되었고 군대는 후임을 똑바로 가르쳐야 하는 의무가 있어. 그때 내가 너한테 욕하고 때린 거 그런 것은 군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야. 네가 아직도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나 본데 그건 네가 속이 좁은 거야."
혜원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너 군대가서 맞고 지냈니? " 혜원이 놀라며 말하자
" 야, 민혁아, 너는 그런 게 안 좋아. 남들 앞에서 나의 체면이나 인격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금 그 이야기가 왜 나와?"
"너 임마, 지난번에 술 먹고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고 했어 안 했어? "
민혁이와 은수의 언성이 높아지자 주변에 앉아있던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시선이 쏠린다.
"조용히 조용히 말해. 여기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
송준오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고 커피를 주문하러 간다.
은수는 벨라가 한 말이 떠올랐다.
'싸워야 할 때 싸울줄 알아야 해'
은수는 침착하고 낮은 어조로 말을 한다.
" 민혁아, 나는 너랑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아. 나를 봐도 아는 척 하지 말아 줘. 그리고 내가 군대 처음 갔을 때 아는 사람이 너밖에 없었는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심하게 대할 수가 있냐? 네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니? 많은 신병들 앞에서 면박을 주고 발길질하고... 한두 번도 아니고 그것은 훈련시키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짓거리였어"
은수는 처음으로 마음속에서 품어왔던 앙금의 찌거기를 꺼내면서 화를 냈다. 그러자 속은 후련해졌다.
" 그것은 너가 하라는 대로 똑바로 안 하니까 나 나름의 방식대로 훈련한 거야"
강민혁도 낮은 어조로 말했다.
"그럼 네가 한 행동이 모두 내 탓이라는거니?"
"내 말의 뜻은 과거에 있었던 일은 그만 잊으라는 거야" 강민혁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은수도 기분이 나빴다.
"너 같으면 잊을 수 있겠어?"
"머저리 새끼, 안 잊으면 어쩔 건데 이런 붕신 같은 새끼. 아직도 붕신같이 구네. 이걸 확"
강민혁은 갑자기 욕을 퍼붓더니 때릴듯한 태도로 손을 올렸다.
혜원이 놀라서
"이것보세요. 미쳤어요? 어디 와서 행패예요? 우리 대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끼어들어서 이게 무슨 경우예요? "
혜원이 강민혁을 보고 쏘아붙이자
" 넌 뭐야 이 쌍년이. 뒈지고 싶어? " 강민혁이 혜원이에게도 욕을 퍼붓자 송준오는 강민혁의 팔을 확 잡더니 팔을 한 바퀴 돌려 꺾어 돌린다.
" 아아..으윽" 강민혁은 팔이 부러질듯한 통증을 느끼며 얼굴이 일그러진다.
" 이 새끼가 정신나갔나" 강민혁은 송준오를 발로 밀어치자 송준오는 발을 걷어차며 주먹으로 얼굴을 내려친다. 그 주먹의 힘은 너무나 강해서 강민혁은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 자리에 쓰러진다.
카페에 앉아있던 손님들은 갑자기 일어난 젊은이들의 싸움에 좋은 싸움구경이라도 생겼다는 듯 구경하면서 자기네들끼리 수근거렸다. 몇몇 사람들은 슬슬 피하며 도망가기도 했다.
" 정말로 미안하게 됐습니다." 송준오는 정중하게 혜원이와 은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카운터로 가서는 소란을 피워서 죄송하다며 5만원 지폐를 지갑에서 한 움큼 꺼내서 주고 쓰러진 강민혁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은수와 혜원도 어찌할 바 모르고 집으로 가려고 길을 재촉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혜원이 물었다.
"강민혁이가 군대에 있을 때 널 괴롭혔니?"
"흠, 하마터면 탈영할 뻔했지" 은수는 한숨을 내뿜으며 그때 괴로웠던 날들이 회상되는지 얼굴이 굳어진다.
"잘 참았어. 그리고 오늘 강민혁이 한테 아는척하지 말라고 제대로 말해줬어. 그 자식 다시는 너한테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야."
" 아니야. 그 놈은 나를 보면 또 괴롭히고 싶어서 안달을 할 거야. 남을 괴롭히면서 쾌락을 느끼는 병적인 측면이 있는 거 같아. 회사에 김대리도 강민혁과 비슷한 성격이야"
" 그럼 그런 놈들은 정의의 힘으로 혼내줄 방법이 없을까?"
" 나같은 찌질한 놈이 어떻게 혼낼 수가 있겠어, 불가능해"
" 너가 왜 찌질해? 내가 너를 아는데 너는 절대 안찌질해. 다만 너는 조금 변했으면 좋겠어.
오늘처럼 네 마음을 확실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 정말 좋아. 속에 마음을 담아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좋을 것 같아"
"고마워. 나도 내가 더이상 찌질한 놈으로는 살고 싶지 않아"
" 나, 오늘 결심했어. 경찰이 될거야. 그래서 미나를 죽인 범인을 내 손으로 잡을 거야"
" 성악가가 되고 싶었던거 아냐? 여자 경찰이 되겠다고?"
" 나 이대로는 도저히 못살겠어. 미나를 위해서 뭐든 할 거야. 그래서 무도단증도 따놓으려고 "무도단증?"
"태권도나 합기도 유도나 검도 등의 무도단증 자격증 따면 좋을 것 같아서, 너도 이런 거 배울 생각 없어?"
" 글쎄..."
"내가 아는 선배가 있는데 완전 특전사 특공무술, 합기도 태권도 뭐든지 잘해. 그 선배가 체육관을 운영하는데 내일부터 같이 다니자."
혜원은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은수는 어찌해야 할 지 고민해 본다고 하고 둘은 각자의 집으로 갔다.
은수는 집에 가서 혜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세상에서 나쁜 사람들과 어차피 공존해서 살아가야 한다면 나쁜 사람들을 피하기만 해서는 문제 해결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혜원이 갑자기 저렇게 변한 것은 그만큼 그녀에게 충격이 컸다는 증거일 것이다.
은수도 군대시절부터 강민혁한테 받은 스트레스와 회사에서 만난 김대리로 인한 스트레스는 트라우마가 되어 은수에게 자신감을 잃게 했다.
은수는 혜원이가 경찰이 되고 싶을만큼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었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송진오는 강민혁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랍고 부럽기까지 했다. 어디서 그렇게 놀라운 힘이 생기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밤새 뒤척이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혜원의 전화를 받고 은수가 나간 곳은 혜원이 선배가 운영하는 체육관이었다.
은수는 그날부터 혜원이와 함께 체력훈련을 하게 된다. 같이 운동도 하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둘은 매우 가까워졌다. 은수는 혜원이와 체력을 단련하면서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고 운동하러 가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혜원이도 은수와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런데 그들이 사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살인뉴스는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경찰은 계속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특이한 점은 20대 젊은 여성들만 살해되는 것이다. 누가 대체 이런 끔찍한 연쇄살인을 계속 저지르는지 증거나 단서조차 찾지 못하는 경찰들을 조롱이나 하는 듯 범인은 계속 그렇게 살인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수가 혜원이와 운동한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혜원은 체육관에 나타나지 않았다. 은수는 혜원이한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은수는 혜원이네 집으로 갔다.
대문은 잠겨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는 은수는 어느새 초조한 기분을 어찌하지 못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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